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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이 수산물과 바다로만 유명한 도시라고 생각하셨다면, 동피랑 벽화마을은 꽤 당황스러운 존재입니다. 저도 처음엔 "회 먹고 바다 보고 오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갔다가, 골목 어귀에서 멈칫했습니다. 언덕 위까지 빼곡하게 채워진 벽화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게 그냥 동네 담벼락 그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벽화골목, 기대보다 훨씬 컸습니다
동피랑 벽화마을은 통영항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형성된 공동체 미술 공간입니다. 여기서 공동체 미술(Community Art)이란, 특정 작가 한 명이 아니라 지역 예술가와 주민들이 함께 공간을 꾸미는 창작 방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마을 전체가 갤러리처럼 기능하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걸어봤는데, 입구에서는 솔직히 별 기대를 안 했습니다. 평범한 어촌 골목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조금씩 올라갈수록 벽화 밀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귀여운 캐릭터 그림부터 통영 바다를 담은 풍경화, 추상적인 패턴까지 스타일이 제각각이었고, 그 다양함이 오히려 질리지 않게 만들어줬습니다.
특히 벽화는 주기적으로 교체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를 벽화 순환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같은 장소를 재방문해도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작가를 섭외해 벽화를 갱신하는 방식입니다. 덕분에 동피랑은 "한 번 가면 끝"인 곳이 아니라 시즌마다 다른 얼굴을 가진 공간이 됩니다.
날개 달린 사람처럼 찍을 수 있는 포토존에서 저도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이게 SNS 인증샷 포인트(Photo Spot)로 굉장히 잘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포토 스팟이란 조명, 배경, 앵글이 최적화되어 별다른 연출 없이도 좋은 사진이 나오는 위치를 말합니다. 실제로 그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동피랑 벽화마을은 국내 대표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 성공 사례 중 하나로 분류됩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도시재생이란 낙후된 지역에 문화·예술적 콘텐츠를 접목해 공간의 가치를 회복시키는 도시 정책을 말합니다. 동피랑은 재개발로 철거될 뻔했던 마을이 벽화 프로젝트를 계기로 오히려 관광 명소로 살아난 사례로, 국내외에서 종종 인용됩니다.
동피랑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입구에서 정상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오르막 코스를 천천히 걸으면서 골목 하나하나를 탐방하는 것이 기본 동선입니다.
- 사진 촬영 목적이라면 사람이 비교적 적은 오전 시간대 방문을 추천합니다. 오후에는 인파가 몰려 구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 골목길 경사가 상당하기 때문에 굽 있는 신발보다 편한 운동화가 필수입니다. 저는 가다가 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 마을 곳곳에 소규모 카페가 있어 쉬어가기 좋지만, 피크 타임에는 줄이 깁니다.
- 방문 후에는 서피랑 마을이나 통영 중앙시장과 연계하면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감성코스 뒤에 남은 씁쓸함
사실 동피랑이 좋으면서도 마음 한켠이 무거웠던 이유가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실제 주민들이 살아가는 생활 공간입니다.
올라가는 길에 담장 너머로 어르신 한 분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표정이 밝지 않았습니다. 잠깐 마주친 시선이었지만, 제 경험상 이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장면이었습니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감성 충전의 공간이지만, 거주민 입장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명이 집 앞을 지나는 일상인 셈입니다.
이 문제는 관광지화된 주거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현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오버투어리즘이란 특정 지역에 관광객이 과도하게 집중되어 주민 생활환경이 침해되고 지역 생태가 훼손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일부에서는 "관광지 활성화가 곧 지역 발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느꼈습니다. 커피숍은 줄이 끊이지 않았고 장사는 잘 되는 게 분명했지만, 그 번영이 모든 주민에게 고르게 돌아가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주요 관광지에서 분산 관광(Distributed Tourism)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분산 관광이란 특정 핫스팟에 관광객이 집중되지 않도록 주변 지역과 연계한 다양한 코스를 개발·홍보하는 전략입니다. 동피랑도 이러한 맥락에서 서피랑이나 미륵산과 함께 묶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느끼기엔 아직 집중도가 높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최대한 조용히 다녔습니다. 일행끼리 목소리를 낮추고, 담장을 손으로 만지거나 기대지 않으려 했습니다. 벽화 중 일부는 도료(塗料)가 직접 칠해진 표면이라 손이 닿으면 쉽게 훼손될 수 있습니다. 도료란 표면 보호나 장식을 위해 바르는 액체 재료를 말하는데, 야외에 노출된 벽화용 도료는 손때나 물리적 마찰에 비교적 취약합니다. 이걸 모르고 손으로 쓱 만지는 분들을 종종 봤는데, 그냥 눈으로만 즐기는 게 맞습니다.
정상 전망대에 올라서면 통영항과 남해 바다가 한눈에 펼쳐집니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잠시 앉아 땀을 식히고 경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동피랑은 분명히 가볼 만한 곳입니다. 하지만 방문 전에 한 가지만 미리 생각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이곳이 누군가의 생활 반경이라는 것. 감성 사진을 찍으러 가더라도, 그 공간을 함께 쓰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더 좋은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동피랑을 돌아본 뒤에는 서피랑이나 통영 중앙시장 쪽으로 이동하면 동선도 자연스럽고, 주민 밀집 구역의 체류 시간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