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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를 못 타면 스키장은 그냥 구경만 하다 오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녀오고 나니, 슬로프 위에 서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지난겨울, 오랜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 평창 용평 스키장을 찾았습니다. 스키를 타기 위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날 하루는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스키 못 타도 괜찮은 이유, 겨울레저의 실제 풍경
사실 저희 일행 중 스키를 제대로 탈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 역시 스키 경험이 없고, 솔직히 지금 몸 상태로 슬로프를 내려오다가는 어딘가 다칠 것 같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키 장비 대신 두꺼운 패딩과 핫팩을 챙겼습니다.
그날 여정은 사실 용평에서만 시작된 게 아니었습니다. 출발 전 강릉에 있는 공원묘지에 먼저 들렀습니다. 그곳에 먼저 떠난 친구가 묻혀 있기 때문입니다. 짧은 추모의 시간을 보내고 용평으로 향하는 길, 차 안 분위기는 이상하게 더 따뜻했습니다. 오랜 친구들과 오랜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리조트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그날 밤은 술 한 잔 하면서 정말 오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고향 얘기, 어릴 적 기억, 지금은 시골에 계신 어르신들 안부까지. 스키장 여행이었는데 정작 스키 얘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슬로프를 바라보며 주차장을 지나는데 활강(滑降) 코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활강이란 경사면을 빠른 속도로 직선 또는 굴곡 코스를 타고 내려오는 스키 종목으로, 스키 경기 중 가장 고속을 요구하는 종목입니다. 용평은 국내 최대 수준의 슬로프를 보유한 곳으로, 총 31개 코스에 최장 슬로프는 5.6km에 달합니다(출처: 용평리조트 공식 홈페이지). 초보자용 완경사 구간부터 상급자용 급경사 구간까지 난이도 분류가 촘촘하게 나뉘어 있어, 처음 오는 사람도 본인 수준에 맞는 코스를 찾을 수 있습니다.
슬로프 난이도는 보통 그린(초급), 블루(중급), 블랙(상급)으로 분류합니다. 그린 코스는 경사도가 낮아 스키 입문자나 어린이도 안전하게 연습할 수 있고, 블랙 코스는 경사도가 급하고 굴곡이 심해 상당한 실력이 요구됩니다. 저는 케이블카 정상에서 블랙 코스 출발점을 내려다봤는데, 제가 직접 봤을 때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였습니다. 스키를 잘 탄다고 해도 저는 아마 그 위에 서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용평 스키장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핵심 준비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성수기와 주말에는 리프트권 및 숙소 사전 예약이 필수입니다.
- 장비가 없다면 현장 렌탈(rental)이 가능하지만, 성수기에는 원하는 사이즈 확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 산간 지역 특성상 기온이 매우 낮으므로 방한복, 장갑, 고글 등 방한 장비를 빠짐없이 챙겨야 합니다.
- 차량 이용 시 스노우체인(snow chain) 등 결빙 대비 장비를 반드시 확인하세요. 스노우체인이란 눈길이나 빙판길에서 타이어에 감아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장치입니다.
- 체력 소모가 크므로 중간중간 실내 휴게 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케이블카로 오른 정상, 예상 밖의 풍경이 기다렸습니다
스키를 타지 않는 저희가 선택한 메인 코스는 케이블카였습니다. 탑승 전에는 그냥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서 경치 좀 보고 내려오는 거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생각보다 훨씬 길고, 훨씬 높이 올라갑니다.
케이블카는 출발 직후 완만하게 시작하다가 중반부터 경사가 급격히 가팔라졌습니다. 꾸불꾸불한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는 내내, 발아래로 험준한 산세가 펼쳐졌습니다. 케이블카 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슬로프를 내려오는 스키어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한 리조트 케이블카가 아니라, 산 하나를 제대로 넘는 느낌이었습니다.
곤돌라(gondola)란 케이블에 매달려 공중에서 이동하는 밀폐형 탑승 칸으로, 스키 리조트에서는 슬로프 상단까지 스키어를 수송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됩니다. 용평의 곤돌라는 일반 관광객도 이용할 수 있어, 스키를 타지 않아도 정상 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정상에 내리니 A급 선수들이 사용하는 활강 코스의 출발 게이트가 눈앞에 있었습니다. 밑을 내려다보니 경사각이 거의 수직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국제스키연맹(FIS) 기준 활강 코스의 경사도는 일반적으로 30도 이상이며, 선수들은 시속 100km 이상으로 활강합니다(출처: 국제스키연맹 FIS). 거기를 스키를 신고 내려오다니, 생각만 해도 온몸이 긴장됐습니다.
전망대는 끝부분이 앞으로 돌출된 구조였습니다. 돌출 전망대란 절벽이나 고지에서 바닥이 유리로 된 구조물을 바깥쪽으로 내밀어, 발아래 허공이 그대로 보이게 만든 구조물입니다. 전망대 끝에 서니 발아래로 산 전체가 그대로 내려다보였습니다. 높이에 예민한 편인데도 저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아찔하다는 말이 그냥 나왔습니다.
전망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뒤쪽 산책로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눈이 쌓인 산길에 기묘하게 굽은 나무들과 바위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겨울 산이었습니다. 스키를 타지 않아도, 이 산책로 하나만으로 왔다 갈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이번 용평 여행에서 확실히 느낀 것 하나는, 스키장이라는 공간을 꼭 슬로프 위에서만 즐길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케이블카와 전망대, 설경 속 산책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가 됩니다. 겨울에 어딘가 떠나고 싶은데 스키를 못 탄다는 이유로 망설이고 있다면, 그 망설임은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단, 방문 전에 리프트권 예약과 방한 장비만큼은 꼭 챙기시길 권합니다. 준비된 만큼 더 오래 머물 수 있고, 더 많은 장면을 눈에 담아올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