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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왕과 사는 남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우리는 왜 나라를 발전시킨 세조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을 더 기억하는 걸까요. 이것이야말로 역사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가장 큰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는 영화입니다. CGV 에그 지수 97%라는 높은 관객 만족도를 기록하며 장항준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이 작품은, 계유정난 이후 단종의 유배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배우들의 호연이 만들어낸 몰입, 그러나 아쉬운 개연성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배우들의 연기력입니다. 특히 유해진은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엄흥도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여기서 엄흥도란 실존 인물로, 영월의 호장(鎬長)이었던 인물입니다. 호장이란 조선시대 지방 행정의 실무를 담당하던 향리 계층의 우두머리를 뜻하는데, 쉽게 말해 지역 토착 세력의 수장이자 실질적인 행정 책임자였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를 마을 이장처럼 각색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권력과 재산을 가진 지역 유지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박지훈이 연기한 단종 역시 눈여겨볼 만합니다. 초반 유약하고 슬픈 눈빛에서 후반 의지를 다잡은 기합까지, 중견 배우 못지않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특히 단종이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변화하는 장면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는데, 그저 비극적인 왕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보여줬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각본은 배우들의 열연을 완전히 받쳐주지 못했습니다. 감정선의 변화 과정이 생략되거나 압축된 부분이 많아 몰입이 툭툭 끊기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개연성 측면에서 아쉬운 장면들이 눈에 띕니다.

  • 엄흥도가 관아의 포졸들을 뚫고 지나가는데 추격자가 없는 장면
  • 한명회가 엄흥도를 계속 의심했음에도 단종의 연기 하나로 넘어가는 장면
  • 금성대군의 반란이 실제로는 시작도 못했는데 영화에서는 대규모 전투로 묘사된 부분

이런 설정들은 극적 효과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희생한 경우입니다. 실제 금성대군의 거사는 단종이 영월로 떠난 지 불과 닷새 만에 고변이 들어와 실패했으며, 세조는 그를 안동으로 옮겨 안치했습니다(출처: 조선왕조실록). 영화처럼 한명회의 매복이나 비장한 칼싸움 같은 건 없었죠.

역사 재현과 왜곡 사이, 그리고 엄흥도라는 존재

<왕과 사는 남자>는 2020년대 사극 치고는 복식 고증에 꽤 신경을 썼습니다. 한명회가 말총 갓이 아닌 대나무 갓을 쓰고, 광천골 사람들이 삼으로 만든 탕건을 쓰는 등 조선 전기 시대상을 반영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여기서 탕건이란 갓 밑에 쓰는 모자의 일종인데, 당시 서민들은 비싼 말총 대신 삼으로 만든 탕건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디테일은 가난한 시골 마을이라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아쉬운 점들이 보입니다. 역사학자 심용환은 씨네21 기고에서 이 영화가 '착한 국왕 콤플렉스'와 '재현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출처: 씨네21). 흰 쌀밥과 고깃국에 대한 집착은 조선 전기보다는 해방 직후 정서에 가깝고, 통돼지 바비큐 같은 연출은 시대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입니다. 당시에는 돼지고기보다 꿩 사냥이 일반적이었거든요.

저는 영화를 보면서 엄흥도라는 캐릭터에 자꾸 시선이 갔습니다. 그는 역사 기록에 실존하는 인물입니다. 중종실록에 따르면 "고을 아전 엄흥도란 사람이 찾아가 곡하고 관을 갖추어 장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영화는 이 인물을 배불리 먹는 게 고민인 평범한 촌장으로 설정하고, 왕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면서 충성을 바치게 되는 과정을 그립니다. 나라의 역적이 되더라도 역사의 죄인으로 남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선택, 그것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단종의 최후에 대한 기록은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세조실록에는 자살로, 중종실록에는 엄흥도의 수습으로, 선조실록에는 금부도사가 사약을 보낸 것으로, 숙종실록에는 공생(貢生)이라는 하급 관리가 죽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공생이란 과거 준비생을 뜻하는데, 지방에서 세금으로 곡식을 바치며 공부하던 신분이었습니다. 영화는 이 모든 기록을 엄흥도라는 한 인물에게 집약시켜 극적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이 제게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사 기록이 분산되어 있다는 건, 결국 누구도 단종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왕을 죽이는 건 국가 정체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책임을 하층민에게 전가하는 정치적 기록이 반복된 겁니다. 영화는 이 구조를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엄흥도를 악인이 아닌 의인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영화는 세조가 단종을 살려두려 했던 정황도 보여줍니다. 실제로 세조는 사육신 사건 이후에도 6개월간 단종 처분을 거부했고, 금성대군에게도 술과 고기, 심지어 겨울용 갖옷까지 보내며 회유했습니다. 단종을 죽이지 않고도 정권을 안정시킬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었던 거죠. 하지만 단종의 장인 송현수의 반란 고변이 들어오고, 의경세자가 급사하면서 세조의 멘탈이 무너지며 결국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호랑이 CG의 완성도 문제, 역사적 개연성 희생, 과도한 연출 등 지적할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만큼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왜 성공한 왕보다 실패한 왕을 기억하는가.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결국 사람들은 권력이나 업적보다 인간의 존엄과 선택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엄흥도가 고되고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이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영화에 공감하는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99%95%EA%B3%BC%20%EC%82%AC%EB%8A%94%20%EB%82%A8%EC%9E%90/%ED%8F%89%EA%B0%80
http://sillok.history.go.kr
http://www.cine21.c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