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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쏘나타

 

솔직히 저는 쏘나타가 처음부터 이렇게 국민차였는지 몰랐습니다. 지금 50대인 제가 처음 쏘나타를 타게 됐을 때도 "이게 중형차구나" 싶을 정도로 당연하게 받아들였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지금의 쏘나타 이미지를 만든 건 1988년에 나온 2세대 모델, 일명 Y2 쏘나타였습니다. 그 전까지 쏘나타는 오히려 실패한 차명이었고, Y2가 나오면서 완전히 판도가 바뀐 겁니다. 1988년 7월 출시 이후 1993년까지 57만 대가 넘게 팔리면서 대한민국 중형차 시장을 완전히 재편했던 이 차, 지금 돌아보면 꽤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습니다.

오른쪽으로 치우친 휠 로고의 비밀

Y2 쏘나타 하면 떠오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휠 한가운데가 아니라 오른쪽으로 삐딱하게 박힌 현대 로고입니다. 저도 어릴 적 이 차를 보면서 "왜 저렇게 치우쳐 있지?"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알루미늄 휠에는 'HYUNDAI' 레터링이 음각으로 들어가 있었는데, 이게 좌우 대칭이 아니라 오른쪽에 몰려 있었습니다. 심지어 좌측 휠과 우측 휠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디자인되어 있어서, 방향 구분 없이 뒤섞여 달린 차들도 종종 보였습니다.

재밌는 건 이게 당시 유행이었다는 겁니다. 1980~90년대에는 폭스바겐, 아우디, 닛산 같은 해외 브랜드들도 비슷한 비대칭 휠을 썼습니다. 골프 1세대 GTI에도 적용됐고, 닛산 세드릭 Y31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균형이 안 맞아 보인다"고 했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신선하고 빨라 보인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취향 차이인 것 같습니다. 저는 솔직히 가운데 있는 게 더 안정적으로 보이거든요.

이 삐딱 로고는 페이스리프트 이후 현대 타원형 로고 시대가 오면서 사라졌다가, 최근 기아 EV9에서 다시 부활했습니다. 기아 측은 새 로고가 가운데 있으면 오히려 어색해서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설명했는데, 30년 전 디자인이 다시 트렌드가 된 셈입니다.

모범택시로 더 많이 본 쏘나타

Y2 쏘나타는 택시 역사에서도 중요한 차입니다. 1991년 뉴 쏘나타 모델부터 택시 트림이 정식으로 나왔는데, 특히 1992년 모범택시 제도가 시행되면서 엄청나게 많이 팔렸습니다. 당시 정부는 모범택시 배기량 상한을 2,000cc로 정했는데, 그 조건에 맞는 차 중에서 쏘나타가 압도적이었거든요. 대우 프린스나 기아 콩코드도 있었지만, 이미 시장은 쏘나타가 장악한 상태였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90년대 초반 풍경은, 일반 택시보다 모범택시로 뉴 쏘나타를 훨씬 더 많이 봤다는 겁니다. 후속 모델인 쏘나타Ⅱ는 오히려 일반 택시가 많았는데, 뉴 쏘나타는 정반대였습니다. 물론 서울이나 광역시 같은 대도시에서는 일반 택시로도 꽤 보였지만, 전체적으로는 모범택시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이후 1995년 정부가 모범택시 배기량 제한을 풀면서 그랜저나 포텐샤 같은 준대형 모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그 전까지는 쏘나타가 모범택시의 대명사였습니다.

저는 승합차를 타다가 쏘나타로 바꿨는데, 장거리 갈 때 확실히 피로감이 덜합니다. 승합차는 공간은 넓지만 승차감이 떨어지거든요. 쏘나타는 중형차답게 정숙하고 안정적이어서, 특히 고속도로에서 편안함을 많이 느낍니다.

캐나다 브로몽 공장의 실패

Y2 쏘나타는 국내에서 대박을 쳤지만, 해외에서는 고전했습니다. 현대차는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해 1989년 캐나다 퀘벡주 브로몽에 연간 10만 대 규모 공장을 세웠습니다. 당시 환율로 약 2억 9천만 달러가 투입된 대규모 프로젝트였고, 퀘벡 주 정부는 상징적으로 부지를 1달러에 제공하는 특혜까지 줬습니다. Y2는 한국 차 중 최초로 해외 현지 생산된 모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1989년 1만 5천 대, 1990년 2만 7천 대, 1991년 2만 8천 대, 1992년 1만 5천 대로 실적이 저조했고, 결국 1993년 10월 공장 가동이 중단됐습니다. 당시 북미 시장은 일본 브랜드들의 현지 생산이 늘어나 공급 과잉 상태였고, 현대차는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져 외면받았습니다. 브로몽은 인구가 적어 노동자 수급도 어려웠고, 주변에 부품 공장이 없어서 부품의 60%를 한국에서 조달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캐나다에 공급할 때도 관세를 내야 했으니, 경제성이 나올 리 없었습니다.

정세영 회장은 나중에 자서전에서 "충분한 시장 조사 없이 브로몽에 공장을 세운 게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현대차는 이 사건을 '브로몽의 악몽'이라 부르며 흑역사로 남겼고, 1996년 현지 법인을 청산했습니다.

Y2 쏘나타는 국내에서는 '차가 좋다'는 평가를 받으며 중형차 시장을 장악했지만, 해외에서는 시장 분석 실패로 값비싼 교훈을 남긴 모델입니다. 제가 지금 쏘나타를 타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건, 결국 그때의 성공과 실패를 거치며 쌓인 노하우 덕분이겠죠. 다만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건, 차가 세대를 거듭하며 너무 커진다는 겁니다. 도로와 주차장은 그대로인데 차만 계속 커지는 건 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쏘나타는 여전히 부담 없이 탈 수 있는 국민차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많은 분들에게 선택받을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namu.wiki/w/%ED%98%84%EB%8C%80%20%EC%8F%98%EB%82%98%ED%83%80/2%EC%84%B8%EB%8C%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