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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순천만 습지가 그냥 갈대밭 구경하는 곳인 줄만 알았습니다. 큰맘 먹고 찾아간 자리에서 뻘 위를 기어다니는 게와 땅 위를 걷는 물고기를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갈대만 보러 갔다가 살아있는 생태계 전시장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갈대밭에서 마주친 것들 —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순천만 습지가 경치 좋은 산책 코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직접 걸어보니 그 말이 절반만 맞다고 느꼈습니다. 경치도 좋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발아래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물들이었습니다.
입구를 지나 데크 산책로로 접어들자마자 뻘밭이 시작됩니다. 처음엔 그냥 진흙밭이겠거니 했는데, 가만히 보니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게였습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뻘 전체가 게로 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를 당황하게 만든 건 게의 생김새였습니다. 집게발 하나는 머리통만 하게 굵고 빨간색인데, 반대쪽은 그냥 작은 발이었습니다. 처음엔 돌연변이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뻘밭에 있는 모든 게가 다 그렇게 생겼습니다. 이 게가 바로 농게입니다. 농게는 수컷의 한쪽 집게발이 몸 전체 크기에 맞먹을 만큼 크게 발달한 것이 특징으로, 이 큰 집게발은 짝짓기 때 암컷을 유인하는 신호 도구로 사용됩니다. 일반적으로 갯벌 생물이라고 하면 조개나 낙지를 먼저 떠올리기 쉬운데, 제 경험상 순천만에서는 농게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합니다.
순천만 습지는 람사르 협약(Ramsar Convention) 등록 습지입니다. 여기서 람사르 협약이란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1971년 이란 람사르에서 체결된 국제 환경 협약으로, 등록 습지는 생태적 보전 가치가 세계적으로 인정된 곳임을 의미합니다. 순천만은 2006년 이 협약에 등록되며 국제적인 생태 보전 지역으로 공인받았습니다(출처: 환경부 국가습지정보시스템).
뻘 위를 걷는 물고기 — 이게 정말 우리나라 맞나 싶었습니다
갈대밭 산책로를 계속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데크가 끝나고 흙길이 나타납니다. 저는 그 지점에서 잠깐 멈춰 뻘을 내려다봤는데, 그때 처음 봤습니다. 물고기가 걸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망둥어, 더 정확히는 짱뚱어입니다. 짱뚱어는 망둥어과에 속하는 어류로, 가슴지느러미를 다리처럼 사용해 갯벌 위를 이동하고 피부 호흡이 가능해 물 밖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어종입니다. 쉽게 말해 물 밖에서도 숨 쉬고 걸어다니는 물고기입니다. 머나먼 아마존이나 동남아 어딘가에서나 볼 법한 생물인데, 이게 순천만 뻘밭에 있다는 사실이 저는 계속 신기했습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구경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태 관광지라고 하면 안내판 앞에서 설명을 읽는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제 경험상 순천만은 달랐습니다. 설명을 읽는 게 아니라 실제로 눈앞에서 보이니까요. 그 차이가 꽤 컸습니다.
순천만 습지의 갯벌 생태계가 잘 유지되는 이유 중 하나는 갯벌의 저서생물 다양성(benthic biodiversity) 덕분입니다. 저서생물이란 갯벌이나 하천 바닥에 서식하는 생물을 총칭하는 말로, 농게와 짱뚱어처럼 뻘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 생물들이 다양하게 살아있다는 것은 그 갯벌이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상태라는 증거입니다.
순천만 습지에서 꼭 눈여겨봐야 할 생물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농게: 수컷의 집게발 한쪽이 극도로 크게 발달한 갯벌 게. 짝짓기 신호 도구로 사용됨
- 짱뚱어: 가슴지느러미로 뻘 위를 걸어다니는 망둥어과 어류. 피부 호흡 가능
- 철새: 흑두루미, 가창오리 등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며 계절에 따라 관찰 종류가 달라짐
- 갈대군락: 가을철 황금빛으로 물드는 대규모 군락지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순천만 — 그리고 현실 걱정
데크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흙길을 따라 올라가면 용산전망대가 나옵니다. 오르막이 제법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보다 힘들었습니다. 이미 넓은 습지를 한참 걸어온 터라 다리가 그리 가볍지 않았거든요. 올라가는 내내 "꼭 올라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런데 정상에 도착하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광활한 습지가 한눈에 펼쳐지면서 S자 물길이 갯벌을 가로지르는 풍경이 그대로 들어왔습니다. 제가 방금 걸어온 그 갈대밭이 저 아래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넓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 먼 길을 어떻게 다시 걸어 내려가지?" 웅장한 풍경을 보면서도 현실적인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이건 제가 직접 겪은 순천만 여행의 솔직한 단면입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순천만이 단순한 갯벌이 아니라 갈대 군락과 갯벌, 수로가 어우러진 복합 생태계이기 때문입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순천만 습지는 약 5.4㎢의 갈대군락과 22.6㎢의 갯벌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내 최대 규모의 갈대군락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출처: 환경부). 단순히 예쁜 경치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생태적 자산인 셈입니다.
이렇게 넓은 습지가 오염 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전망대 위에서 보니 더욱 실감났습니다. 아래에서 걸을 때는 몰랐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 규모와 청정함이 한꺼번에 느껴졌습니다. 이걸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관리 기관의 노력이 새삼 고마웠습니다.
순천만을 제대로 즐기려면 발품이 필요합니다. 빠르게 둘러보겠다는 생각보다 반나절 이상을 충분히 잡고 가는 편이 낫습니다. 특히 노을 시간대에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많은 분들이 일부러 시간을 맞춰 찾아올 만큼 인상적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낮에 방문해서 그 노을을 못 봤습니다. 이건 다음 방문 때 꼭 해결하려고 합니다.
순천만 습지는 생태계의 살아있는 교과서 같은 곳이었습니다. 갈대밭, 농게, 짱뚱어, 그리고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광활한 갯벌까지,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자연 관광지라고 해서 그냥 눈으로만 보고 오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면 생각을 바꿔도 좋습니다. 직접 걸어보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살아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한 번쯤 시간 여유를 두고 평일에 방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