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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저도 감천문화마을이 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그냥 오래된 산동네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직접 걸어보고 나서, 이 마을이 유명해진 이유가 단순히 '예쁜 사진' 때문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한국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풍경, 실제로는 어떨까
감천문화마을을 두고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부릅니다. 산토리니(Santorini)란 그리스 에게해에 위치한 섬으로, 절벽을 따라 흰 집들이 계단식으로 늘어선 풍경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감천이 산토리니를 닮았다고 하는 이유는 경사면을 따라 집들이 층층이 올라가는 계단식 주거 배치(테라스 주거형) 구조 때문입니다. 테라스 주거형이란 경사지에 집을 지을 때 아래층 지붕이 위층의 마당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방식으로, 좁은 땅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규모가 훨씬 컸습니다. 수백 채가 넘어 보이는 집들이 산비탈 전체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고, 골목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도 빠듯할 만큼 좁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사진으로 볼 땐 알록달록하고 예쁜 동네처럼 보이는데, 실제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지붕이 내려앉거나 벽이 무너진 집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 집 앞에서 저절로 발이 멈춰졌는데, 내부가 훤히 보이는 크기가 정말 방 하나에 부엌이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어떻게 생활했을지, 그리고 이 좁은 골목으로 이삿짐을 어떻게 날랐을지 진지하게 궁금해졌습니다.
감천문화마을이 본격적으로 관광지로 탈바꿈한 건 2009년부터 시작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마을미술프로젝트) 이후입니다. 마을미술프로젝트란 정부와 지역 예술가들이 협력해 낙후된 마을에 벽화와 설치미술을 도입함으로써 지역 재생을 유도하는 사업으로, 감천이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힙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벽화골목 탐방, 어린왕자 조형물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
감천문화마을의 대표 포토명소로는 어린왕자와 여우 조형물이 있는 전망대가 꼽힙니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는 파노라마 뷰가 펼쳐지고, 날씨가 맑은 날이면 부산 시내와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일반적으로 감천 여행 후기에는 어린왕자 조형물 앞 인증샷이 빠지지 않는데, 저는 사실 그보다 훨씬 더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골목을 걷다가 나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자연스럽게 말을 나누게 됐는데, 오래전에 남편을 따라 이 동네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지금은 혼자 계신다고 했습니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예쁜 골목'이라며 사진 찍고 다니는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살아온 삶의 자리라는 게 실감이 났습니다.
감천문화마을을 제대로 탐방하기 위해선 입구에서 안내 지도를 먼저 받는 것을 추천합니다. 골목 구조가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지도 없이 걷다 보면 같은 골목을 반복하거나 주요 포인트를 놓치기 쉽습니다. 탐방 동선을 잡을 때 참고할 핵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마을 입구 안내센터에서 지도 수령 후 출발
- 어린왕자·여우 조형물 전망대 (마을 전경 조망 포인트)
- 하늘계단 및 테마 벽화 골목 (구간별 분위기 상이)
- 태극도 도장 및 창시자 묘역 (역사·문화 탐방 포인트)
- 마을 내 소규모 카페에서 휴식 후 마무리
전체 탐방 시간은 여유롭게 2시간에서 3시간 정도를 잡는 것이 적당합니다. 감천문화마을 방문객 수는 연간 수백만 명에 달하며, 부산시 통계 기준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약 390만 명이 방문한 기록이 있습니다(출처: 부산광역시).
태극도 마을의 역사, 알고 보면 더 깊이 보이는 감천
제 경험상, 감천문화마을을 단순히 사진 찍는 공간으로만 보는 건 이 마을의 절반도 못 보는 것입니다. 이 마을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배경에는 태극도(太極道)라는 종교 공동체의 역사가 있습니다.
태극도란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대거 몰려들던 시기에 형성된 신흥 종교 단체로, 당시 지도자를 중심으로 신도들이 집단 이주하여 감천에 마을을 이루며 정착했습니다. 당시 주거지 선택의 여유가 없었던 피란민들이 경사진 산비탈에 작은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계단식 마을 구조의 시작입니다.
실제로 마을을 걷다 보면 태극도 도장 건물과 창시자의 묘역이 잘 조성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도장 내부는 일반 방문객이 들어갈 수 없었지만, 담장 너머로 한복을 입은 사람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직도 이 종교를 믿고 실제로 생활하는 분들이 이 마을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마을 풍경이 다르게 보입니다. 단순히 낡은 집들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종교적 믿음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가 이 좁은 골목 안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할머니와 짧게 나눈 대화가 그 역사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방문 전에 알아두면 좋을 실용적인 유의사항도 짚어두겠습니다. 골목 경사가 상당하기 때문에 굽 높은 신발은 피하는 것이 좋고, 여름철 방문 시 뜨거운 햇볕을 막을 준비가 필수입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현재도 주민이 거주하는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 시 주택 내부나 주민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합니다.
감천문화마을은 예쁜 포토존 그 이상의 공간입니다. 한 번쯤은 사진을 잠시 내려놓고, 이 마을이 어떤 이유로 생겨났고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생각하며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렇게 걸으면 골목 하나하나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인근의 자갈치시장이나 국제시장과 함께 묶어 반나절 코스로 짜면, 부산의 오래된 결과 현재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알찬 여행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