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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경포대

 

솔직히 저는 경포대가 그냥 해수욕장 옆에 있는 정자 하나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속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내려오는 길에 잠깐 들르는 정도로 계획했는데, 막상 가보니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금방 깨달았습니다. 가시연 습지부터 경포호, 경포대 누각, 그리고 경포해변까지 이어지는 동선 하나만으로도 반나절이 꽉 찼습니다.

가시연 습지에서 시작하는 산책, 생각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경포대 방문자라면 대부분 경포해변 주차장을 먼저 찾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내비게이션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가시연 습지 방문자 센터 쪽 주차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꽤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주차장은 거의 비어 있었고, 그 조용한 분위기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시연 습지는 생태계 보전 지역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여기서 생태계 보전 지역이란 동식물의 서식 환경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정·관리하는 구역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사람 손을 최소화하고 자연 그대로 유지하는 공간입니다. 안내판을 보니 조류만 해도 수십 종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저는 솔직히 말해 물 위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새를 보면서도 어떤 종인지 바로 돌아서면 잊어버렸습니다. 새들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다 비슷하게 생긴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이 공간이 참 좋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습지 특유의 물기를 머금은 땅이 발아래에서 살짝 흔들리는 느낌, 공기 자체가 달랐습니다. 이런 습지가 도심과 가까운 곳에 잘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내심 흐뭇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곳이 해파랑길 39코스에 속한다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습니다. 해파랑길이란 부산 오륙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총 770km의 장거리 도보 트레일을 말합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해파랑길 전체를 완주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고 하는데, 그 규모를 생각하니 경포대 구간 한 토막을 걷는 것도 어딘가 연결된 느낌이 들어 발걸음이 더 가벼웠습니다.

경포대 방문 전에 챙기면 좋을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주차는 가시연 습지 방문자 센터 쪽 주차장 이용 시 혼잡을 피할 수 있습니다
  • 해파랑길 39코스 동선을 따라 걸으면 습지 → 경포호 → 경포대 누각 → 경포해변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 평일 방문 시 주차와 산책로 모두 여유롭습니다

관동팔경 경포대, 올라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일반적으로 경포대를 단순한 정자 건물 정도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직접 올라서고 나니 이곳이 왜 관동팔경(關東八景)에 이름을 올렸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습니다. 관동팔경이란 강원도와 함경도의 관동 지역에서 경치가 빼어난 여덟 곳을 묶어 부르는 명칭으로, 예부터 시인과 문인들이 즐겨 찾던 유서 깊은 명승지들입니다.

경포대의 역사는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처음 지어진 이후 여러 차례 이전과 중건을 거쳐 현재 위치에 자리 잡은 것은 조선 중기 이후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문화재청). 7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건물 위에 제가 서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제가 직접 누각에 올라서 느낀 건, 시원하게 트인 경포호 방향 풍경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 자리에서 막걸리 한 사발 기울이며 시를 읊던 옛 선비들의 모습이 그려지더라고요. 그런데 그 이미지가 곧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관동팔경을 즐기던 사람들이 대부분 권력을 가진 사대부 계층이었다는 점입니다. 전망 좋은 곳에 앉아 풍류를 즐기는 동안, 그 아래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서민들의 삶은 어떠했을지, 잠깐이지만 생각이 거기까지 흘렀습니다. 경치 좋은 누각 하나에 이런 감상이 딸려 온다는 것, 여행의 묘미가 이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경포대 누각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서 팔작지붕이란 지붕의 네 면 모두에 경사가 있으면서 측면 상부에 삼각형 벽면(합각)이 형성되는 한국 전통 건축 양식 중 하나입니다. 단순히 예쁘게 생긴 지붕이 아니라, 눈비가 고루 흘러내리도록 설계된 기능적인 구조이기도 합니다. 오래된 건물인데도 형태가 반듯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포해변까지 걸어서, 바닷바람이 마무리해 줬습니다

경포대 누각을 내려와 경포해변까지 걷는 구간이 이날 일정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경포해변은 여름 피서철에 혼잡한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가 방문한 시기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해변 전체를 천천히 걸을 수 있었습니다.

모래사장에 발이 닿는 순간부터 바닷바람이 확 몰려왔습니다. 가슴이 탁 트이는 그 느낌은, 솔직히 사진이나 글로는 전달이 안 됩니다. 그냥 직접 서봐야 압니다. 동해안 특유의 파도 소리와 넓은 백사장이 만들어내는 조합은 서해나 남해와는 확실히 다른 질감이 있습니다.

경포해변의 경우 조수 간만의 차가 작은 동해안 지형 특성상 백사장이 넓고 경사가 완만합니다. 조수 간만의 차란 하루 중 만조(물이 가장 높을 때)와 간조(물이 가장 낮을 때)의 수위 차이를 말하는데, 동해는 이 수치가 서해에 비해 현저히 낮아 모래사장의 형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덕분에 파도가 일렁이는 해변선이 일정하게 펼쳐져 사진 찍기에도 좋습니다. 제가 별다른 구도를 잡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마다 그림처럼 나왔습니다.

해변을 따라 걸으면서 해변 카페 한 곳에 들렀는데, 창가 자리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그 시간이 이날 중 가장 평온한 순간이었습니다. 특별한 일 없이 그냥 앉아 있었을 뿐인데, 그게 충분히 좋았습니다.

속초에서 경포대까지, 이 여정 전체를 돌아보면 딱히 대단한 걸 한 건 아닙니다. 습지를 걷고, 오래된 누각에 올랐다가 내려와 바닷가를 걸은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모든 장면이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경포대는 무언가를 해야 즐거운 곳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한 곳입니다. 다음에 강릉을 다시 찾는다면 이번엔 저녁 노을 시간에 경포호 주변을 한 번 더 걷고 싶습니다.

 

참고: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sc=tab.blog.all&sm=tab_jum&query=%EA%B0%95%EB%A6%89+%EA%B2%BD%ED%8F%AC%EB%8C%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