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힘들게 지낸 과거의 시간

     

     

     나는 10년 이상을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이 일이 좋아서 한 건 아니다. 먹고 살려면 뭐든 해야 하는 데 이왕 하는 거 나에게 맞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처음 시도한 게 꽃집, 소위 관엽 식물(관상용 식물) 화훼 판매점이다. 나는 꽃과 식물을 좋아한다. 여기서 일하면 언제나 기분이 좋을 줄 알았다. 그 환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몸보다 큰 단지 같은 화분에 내 키보다 큰 식물을 잡도리하듯 잡아서 집어넣고 흙을 가득 채워야 했다. 그걸 또 차에 싣고 배달해야 했다. 그땐 정말 팔이 빠지고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화분에 심긴 식물들 보면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여름의 하우스 온도는 40도 이상이 일상이다. 하우스에서 화훼 작업을 하는 것도 고역이다.

    누구나 하우스에 처음 들어오면 감탄을 한다. 온갖 종류의 식물들이 끝도 없이 있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보는 예쁘고 신비롭고 또는 멋있기도 한 식물들이 넘치도록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출근하는 자체가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우스 한켠에서 고참 직원과 함께 분갈이를 하고 있는데, 어떤 고객이 다가와 말했다. “어머! 여기서 일하면 너무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식물들 속에 있으니까요그 말에 고참 직원이 대꾸했다. “여기서 일 해 볼랍니까? 식물만 쳐다보면 이가 갈립니다.” 당시에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내 마음도 그 고참처럼 변해갔다. 경기도 지역에서 9톤 탑차에 한차 싣고 여기 울산에 오면 식물의 특성상 일일이 손으로 하나씩 내려야 하고, 하차하는 데만 서,너 시간이 걸렸다. 정말 힘든 작업이다. 식물을 관리하는 중에도 상품 가치가 없어지면 살아있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가차 없이 버려졌다. 생명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다. 사실 관엽 식물은 수입산이 많고 우리나라 기후에 안 맞는 게 많다. 식물을 팔 때 우리끼리 요놈은 두 달은 가겠네하고 뒷말을 하곤 했다. 거기서 식물은 상품일 뿐이지 생명이 아니다. 난 지금도 화분을 집에 두지 않는다. 왠지 새장 속의 새 같기 때문이다. 창밖에 펼쳐진 숲이 나의 정원이라 생각하며 산다.

    그렇게 고생하다가 화훼일도 아니다 싶어 새롭게 찾은 일이 주문 가구 제작이다. 난 성실하면서 섬세하기 때문에 이 일이 나랑 맞을 줄 알았다. 그래서 무작정 시작했다. 혼자서 구상해 가며 하는 작업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높이가 2미터가 넘는 가구를 빌라 계단을 들고 올라가다 들지도 놓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나왔다. 가구가 집 앞을 막고 있으니 그 사람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말없이 가구 밑으로 들어와서 번쩍 들어주고 무심히 떠났다.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정말 감사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다시 온다면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다. 그 후로 이 일도 흥미가 떨어지고, 원래 생각했던 원목 가구 쪽으로 눈을 돌리기도 했으나 무시무시한 톱날 기계들이 너무 무서웠고 경제적 수효도 가늠이 되질 않았다.

    이제는 적성이고 뭐고 다 떠나서 그저 밥이나 먹고살 만한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에 현재 본부 도장 종사원으로 있는 모 임원의 조언에 따라 카고 크레인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장비를 덜컥 사서 중기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 후로 10년 넘게 여러 건설 현장을 다니며 숱한 일들을 겪었다.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기면서 아직 죽을 운명은 아닌가 보다 싶었다. 그러나 이 일 또한 영혼이 거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현장 일은 아무리 오래 해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책속에 펼쳐진 마법의 세계

     

    팍팍한 삶 속에서 내게 망중한을 선사한 건 책이다. 론다 번의 책을 읽으며 시크릿의 마법을 걸어보기도 하고, 나플레온 힐의 책을 읽으며 100억 부자를 꿈꾸기도 했다. 데일 카네기의 책을 보면서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많은 성찰을 해 보았다. 난 소설은 좀 기피했다. 남이 쓴 허구에 농락당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한강의 소설은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책 속의 소년이 금방이라도 책 밖으로 걸어나 올 듯 생생했고, 소설 속의 인물들과 내가 한 공간의 공기를 나눠마시는 듯한 긴장감마저 들었다. 나와 갑장인 작가가 80년 봄에 광주에서 살았나 싶을 정도로 빈틈없고 섬세한 표현들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참혹한 장면들을 가감 없이 표현한 대범함에 호랑이의 심장을 가졌나!’ 싶어 놀라기도 했다. 글이란 게 이렇게 매력적일 수가 있다니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고 글의 세계로 점점 빨려 들었다. 여러 책을 보면서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 없었다. 책은 볼수록 자꾸 더 보고 싶었고 이를 통해서 얻어지는 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편안해졌다. 걱정 근심도 줄었고, 무엇보다 집착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원적 문제에 대해서도 훨씬 가볍게 다가섰다. 생각해 보니 나는 경제형의 인간은 아닌 것 같다. 살아보니 돈이란 게 막상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돈을 쓰면서 얻는 기쁨에 별 흥미가 가지 않았다. 지금까진 세상의 기준에 맞추느라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마음에도 없는 일만 하며 살았다.

    19살부터 집을 떠나 공장에서 일하면서, 언젠가는 대학에서 공부하겠다는 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20대 중반에 도문에 입도하면서 수도하느라 그 꿈을 접었다. 그리고 결혼하면서 공부의 꿈은 더 멀어졌다. 가장의 책임감으로 나는 대학 공부 대신 한평생을 노가다 인생으로 살았다. 의미 없이 무료하게 살아가던 작년 봄에, 아내가 대진대에 진학해 보라고 권유했다. 처음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왜 이러나...?’ 30년 전에 묻었던 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어떻게 공부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래도 되나싶은 생각도 잠깐씩 들었다. 공부하고 싶은 열망이 이렇게나 클 줄은 나도 몰랐다. 그래서일까 냉정하고 현실적이던 내가 현실적인 문제가 생각나지 않았다.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50 중반을 넘은 지금, 더 이상 적성을 고민하지 않는다. 대학에 오고부터 적성이란 단어를 잊고 살고 있다. 이렇게 글로써 나를 표현하는 게 좋고 묘하게 매력 있다. 그래서인가 긍정적인 사고가 늘었고, 삶에 만족감이 든다. 예전의 나답지 않게 현실적인 문제가 걱정이 되지 않는다. 일을 안 하면서도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품위유지에 관심이 없으니 돈 들어갈 일도 거의 없고, 자신을 믿기 때문에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든다.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내생애 최고의 순간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 언제였던가?. 최고의 순간인지는 모르겠으나, 좋았던 기억은 삶의 군데군데 있었던 것 같다. 최고의 순간을 과거의 한 사건에 관한 얘기로 쓰기에는 내 철학이 너무나 확고하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단연 오늘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게 삶에 대한 예의이고 사람으로 태어나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오늘이 최고의 순간인가?’라는 물음에 주저 없이 그렇다편파 판정을 내릴 것이다. 나의 판정을 의심 없이 믿을 것이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단연 오늘이며 내일은 더 최고의 날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맞이하는 그날이 내 생애 최고로 눈부신 날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