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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딸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한국적 향수가 물씬 풍기는 이 글은 1954년 가수 백설희가 발표한 봄날은 간다의 노랫말이다. 한국전쟁 당시에 전쟁의 참혹함과 대비된 화창한 봄날이 오히려 슬펐던 한국인의 한 서린 정서를 담아낸 노래다.

     

    차지연의 노래

     

    밤에 잠이 오질 않아 유튜브를 뒤적거리다 우연히 현역 가왕 프로에 출연한 차지연의 봄날은 간다영상을 보았다. 눈물이 났다. 또 보았다. 또 눈물이 났다. 계속 보았다.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몸짓 하나 표정 하나 미세한 손 떨림 하나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섬세한 표현 하나하나 AI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영상에서 차지연은 83세의 노인으로 나온다. 내 어릴 적 할머니가 생각났다. “아이고, 내 강세이...”하면서 나를 끔찍이도 아끼셨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끔찍한 가난과 가정폭력으로 얼룩졌던 청소년기를 지나고 어른이 되었다. 삶의 여정에서 만난 시련의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내 영혼은 병들기도, 성장하기도 했다. 이제는 중년의 가장이 된 나는 많이 지쳐있다. 영화<범죄와의 전쟁>에서 하정우가 그랬다. “오늘 좀 맞자.” 차지연은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오늘 좀 울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추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고단했던 그녀의 삶이 그 눈빛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그 눈빛 속으로 나의 삶이 투영되었다. 영화<천문>에서 세종대왕이 장영실에게 했던, 잔잔하지만, 고뇌에 찬 그 말을 나에게 전하고 싶다. “이보게! 자네가 고생이 많았네.” 먹물(문과 공부나 관련일) 이 되고 싶었던 빛바랜 유년 시절의 꿈을 이제라도 이루게 되어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그녀의 인생

     

    노래 하나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성, 그런 감성을 노래로 표현하는 차지연이란 사람이 궁금해졌다.

    젊은 시절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빚을 떠안고 소녀가장이 되어서 힘들게 살았다. 반지하 월세방에 살면서 방세를 못 내서 살림살이를 들고 거리로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뮤지컬 극단에 있으면서 방세 때문에 언제나 월급을 가불해 달라고 사정했다고 한다. 한번은 신인일 때 라이언 킹이라는 뮤지컬에 주연으로 발탁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기를 한 주변 사람이 그녀가 바닥에 앉아 먹고 있던 도시락을 발로 차버리는 일도 있었다.

    그녀의 한스러운 인생 이야기가 예술로 승화돼서 영혼이 통곡하듯 토해 내고 있었다. 잠잠하던 내면에 뭔가가 꿈틀거렸다. 그녀의 고단한 인생사를 내가 겪은 듯 가슴이 아렸다. 시련을 견뎌낸 사고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고, 그 표현은 영혼이 영혼에게 전하는 언어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