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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행복은 내안에 있다“는 말이 있다. 이게 무슨 말일까? 내안이라는 것은 내가 통제할수 있는 범위를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조절하는지의 여부에 의해서 나의 행복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내가 통제할수 없는 범위의 일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나를 어떻게 조절하는지의 여부에 의해서 행복할수도 불행할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가까운 사람의 행동여하에 따라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불행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내 통제범위밖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때 느끼는 행복도 불행도 가짜인가? 아뭏튼 우리는 옆의 사람에 의해서 많은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알수없기 때문에 나의 행복여부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나의 행복을 남이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이렇게 불안정한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옆에서 나에게 욕하고 비난해도 나를 잘 통제하면서 행복할수 있다면 얼마나 안정적이고 좋겠는가. 옆에서 나를 욕하는데 행복할수 있다는게 가능한것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가 행복이라는 진짜 의미를 모르는 것일까? 기쁘고 즐거운 상태를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알고 지금까지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리 생각해보고 싶다. 주변의 상황이 어떻게 되든 감정에 끄달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수 있는 것이 진짜 행복이 아닐까?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뿐 흔들리지 않는 상태, 그러면서 나의 할 일을 소신껏 할 수 있는 상태, 이렇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행복한 날이다. 이렇게 살아야 뭔가를 이룰수 있다. 이렇게 살아야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주변사람의 행동에 일희일비해서 감정적으로 힘들고, 그로 인해 나의 할 일을 성실히 못하게 될 때, 그 책임은 언제나 나에게 돌아온다. 그것은 마치 도돌이표 인생과 같다. 행복의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다시 정립하자!
삶의 태도
어떤 스님이, 동네처녀가 애기를 들고 와서 당신의 아이라고 했을 때 ”그런가” 하면서 애기를 받아 길렀다. 주변사람의 비난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아이가 장성했을 때 여자가 찿아와서 내 아이라고 데려갈려고 할때도 “그런가” 하면서 아이를 내 주었다 한다.
이 스님은 주변의 반응에 영향받지 않았다. 이정도 일은 스님의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인간이란 존재는 언제나 남의 불운을 보고 즐기는 악한 습성이 있다는걸 알기에, 그런 습성은 관심을 보일수록 더 하다는걸 알기에, 모르쇠로 일관한 측면도 있었을까? 이유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어쨌든 스님은 소모적 에너지를 전혀 쓰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세운 분 들은 언제나 주위로부터 비난을 들었다. 협박과 회유를 받기도 한다. 엄청난 반대에 부딧치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아니 그들도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간들을 견뎌낸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끝까지 해나간다. 그러다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중에야 인정을 받기도 한다. 옳은 일을 하면서, 평생 남을 위해 살면서 멸시와 조롱을 받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죽을때조차 억울하게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그렇게 몇백년이 지난후에 그의 공로가 인정받기도 한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수가 있을까? 아니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어리석다. 남에게 좋지못한 영향을 주고 또 좋지못한 영향을 받고 괴로워하면서 산다. 그러면서 소모적인 일에 에너지를 낭비한다. 그러다 보니 뭔가에 정진해서 이루어 내는 에너지가 부족하다. 인간들의 세상은 왜이렇게 비이성적일까? 이런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한다는건 곧 인격적 성숙을 의미하는 것 같다. 행복한 상황보다 행복한 내면을 만드는데 집중해야 겠다.